방문일 : 2026.02.23
사찰 위치 지도

1. 관음사
유래와 연혁
인터넷으론 이 정보를 구할 수 없다
아래 정보는 Google Gemini 제공 정보이다(AI 정보는 종종 틀린다는 점을 감안할 것)
"관음사의 창건 시기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신라 시대 창건설: 신라 말기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했다는 설입니다. 도선국사가 북한산의 지기(地氣)를 살피며 비보사찰(裨補寺刹) 중 하나로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조선 시대 관련 설: 실질적인 기록이나 유물 면에서는 조선 시대 이후의 활동이 더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입기 위해 기도 정진하던 수행처로서의 성격이 강합니다.
2. 주요 연혁
관음사는 긴 세월 동안 여러 차례의 중건과 중수를 거치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조선 후기: 당시 북한산은 한양 도성을 방어하는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인근 사찰들은 승병들의 거점이나 왕실의 기도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관음사 역시 이 시기 수행과 기도의 도량으로 명맥을 이었습니다.
근대 및 현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되거나 퇴락한 부분을 이후 지속적으로 중수하였습니다."

수심화개실

용도가 뭘까? 참선 수행방인가?
무량수전





無量光中化佛多 무량광중화불다
仰瞻皆是阿彌陁 앙첨개시아미타
應身各挺黃金相 응신각정황금상
寶髻都旋碧玉螺 보계도선벽옥라
한량없는 빛 속에 부처님 수없이 나투시니
우러러 보니 모두가 아미타일세
나투신 몸 각각이 황금상으로
보배 상투 모두 벽옥으로 두르셨네
출처 : 華嚴大禮文
무량수전 외벽 불화

單衣夫婦의 옷 공양 이야기(부처님의 전생담)(Gemini와의 공동 작업을 통한 해석)
어느 가난한 부부가 옷이 한 벌 밖에 없어 서로 번갈아 입고 옷 입은 사람은 바깥에 나가고 옷 벗은 사람은 집에 있어야 되었는데 외출한 남편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환희하여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벗어 공양 올렸다고 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위의 그림은 집에 있던 아내가 옷을 벗어 공양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혜능은 오조홍인에게서 전법의 표시로 의발을 받아 해칠 무리들을 염려하여 남쪽으로 피신한다. 혜능이 오조의 의발을 받았다는 것을 눈치챈 대중은 가사와 발우를 빼앗기 위해 수백의 사람들이 그 뒤를 쫓는다 .
혜능은 남쪽으로 향한 지 두 달 만에 대유령(大庾嶺)에 이르렀다. 대유령은 남⋅북이 갈라지는 중요한 고갯마루였다. 쫓는 무리 중 발 빠른 장군 출신의 혜명(慧明)이라는 학인이 가장 먼저 혜능의 뒤를 밟았다. 혜능은 이미 혜명의 발걸음이 가까이 온 조짐을 알고서 대유령 막바지 바위 위에 가사와 발우를 얹어놓고 숲속으로 몸을 피했다. 뒤쫓아 온 혜명이 이를 발견하자 가사와 발우를 집어 들려고 했으나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에 놀란 혜명은 두려워져 진리는 힘으로 빼앗을 수 없는 것임을 깨닫는 순간 마음을 바꾸어 이렇게 말했다.
“행자님, 행자님, 저는 법을 구하러 온 것이지 가사와 발우를 가지러 온 것이 아닙니다.”
이 소리에 혜능이 나타나 바위에 올라앉아 말했다.
“너는 무엇을 구하러 왔는가? 옷을 구하려는가, 법을 구하려는가?”
이에 혜명은 넙죽 엎드려 말했다.
“옷을 구하려는 것이 아니고, 다만 법을 구하려니, 행자께서 저에게 법을 일러 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헤능이 다음과 같이 유명한 말을 했다.
“너는 잠시 생각을 거두어라, 그리고 선도 악도 모두 생각하지 말라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이러한 때에 부모가 너를 낳기 이전의 본래면복(本來面目)을 돌이켜 봐라.”
혜명이 이 말이 떨어지지 마자 홀연히 묵묵히 계합해서 크게 깨달아, 드디어 절하며 말하기를,
“사람이 물을 마셔보고 차고 뜨거운지 아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오조 문하에서 30년을 공부했으나 오늘에야 비로소 과거의 잘못을 알았습니다.”라고 했다.
[출처] <혜능(慧能, 638~713) 대사의 오도송>|작성자 아미산을 약술함
무량수전 내부

주불이 아미타불, 협시보살은 대세지보살(좌), 관세음보살(우)

무량수전의 신중단
독성각



2구절씩을 묶어 한 개의 주련판에 담았다
那般神通世所稀 나반신통세소희
行臧現化任是爲 행장현화임시위
松巖隱跡經千劫 송암은적경천겁
生界潛形入四維 생계잠형입사유
산신각



독성각처럼 2구절씩을 묶어 한 개의 주련판에 담았다
靈山昔日如來囑 영산석일여래촉
威振江山度衆生 위진강산도중생
萬里白雲靑嶂裡 만리백운청장리
雲車鶴駕任閒情 운거학가임한정
관세음보살상

2. 문수사
사찰 유래와 연혁 (문수사 홈페이지에서)
서울의 진산(鎭山)인 삼각산(三角山) 정상(頂上)에 자리한 문수사(文殊寺)는 고려예종(高麗睿宗)4년(1109)에 대감탄연국사(大鑑坦然國師)께서 개산(開山)하였고 국사께서는 주위의 절묘한 기암괴석(奇岩怪石)과 경관(景觀) 천연동굴(天然洞窟)에 매료되어 이곳을 불법의 유연찰토(有緣刹土)로 정하고 불우(佛宇)를 지어 문수암(文殊庵)이라고 하고 천연동굴(天然洞窟)을 문수굴(文殊窟)이라 명명(命名)하였다. 국사(國師)께서는 참선(參禪)과 교학(敎學)을 두루 하여 국사로 책봉(冊封)되었을 뿐 아니라 고려조(高麗朝) 제일가는 명필가(名筆家)로써 그의 필적(筆跡)은 청평(淸平) 문수원기(文殊院記)와 예천북룡사비(醴泉北龍寺碑) 북한산 승가굴중수비(僧伽窟重修碑) 청도 운문사원응국사비(雲門寺圓應國師碑)가 오늘날까지 전한다. 고려불교중흥조(高麗佛敎中興祖)인 태고보우국사(太古普愚國師)께서도 이 동굴(洞窟)에서 정진삼매(精進三昧)중 청의동자(靑衣童子)로부터 차(茶)한잔 얻어 마시고 활연대오(豁然大悟)하였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후로부터 수많은 고승석덕(高僧碩德)의 주석처(住錫處)가 되었으며 신령(神靈)한 영험도량(靈驗道場)으로 널리 알려져 국내제일(第一)의 기도도량(祈禱道場)이 되었다. 고려의종(高麗毅宗) 21년(1167)에 왕(王)이 친히 등정(登程)하였고 조선조문종(朝鮮朝文宗) 원년(1451)에 문종의 따님이신 연창공주(延昌公主)가 중창(重創)하여 한때는 왕가(王家)의 원찰(願刹)이 되기도 하였다(고려사 왕조실록) 조선조(朝鮮朝) 암행어사(暗行御史) 박문수(朴文秀)도 그의 부친(父親)이 오랫동안 후사(後嗣)가 없어서 이곳에서 기도(祈禱)로 얻어진 인물(人物)이며 이승만(李承晩) 전대통령(前大統領)도 그의 자당(慈堂)께서 이곳에서 기도로 얻어진 인물이다. 이 인연(因緣)으로 4.19직전 82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친히 등정(登程)하여 문수사(文殊寺)의 사액(寺額)을 남기고 사내대중(寺內大衆)과 함께 기념사진(記念寫眞)도 찍어 현재 보존되어 있다.
1921년에 삼성각을 중창(重創)하고 오백나한전을 개축(改築)하였다. 이후 6.25동란으로 소진(燒燼) 되었던 것을 당시 서신수(徐信洙)스님의 발원(發願)으로 고(故) 박충식(朴忠植) 국회의원이 개축(改築)하였다.
1983년 5월에 허혜정(許慧淨)스님이 주지(住持)로 부임(赴任)하여 삼성각(三聖閣)과 나한전(羅漢殿)을 재 개축하고 약 40평으로 된 천연동굴(天然洞窟)을 굴법당(窟法堂)으로 장엄(莊嚴)하여 사찰을 찾는 모든 불자들에게 환희심(歡喜心)을 갖고 기도(祈禱)와 참배(參拜)를 할 수 있도록 조성하였다.

보광당 혜정 대종사 비와 부도


대웅전





刹塵心念可數知 찰진심념가수지
大海中水可飮盡 대해중수가음진
虛空可量風可繫 허공가량풍가계
無能盡說佛功德 무능진설불공덕
티끌 같은 이 마음 다 셈하고
큰바다 저 물을 다 마시고
허공 끝 헤아리고 바람 묶는다 해도
부처님 공덕은 능히 다 말할 길 없네
출처 : 화엄경 입법계품
대웅전 안

주불 : 석가모니불 좌협시 : 보현보살 우협시 : 문수보살
대웅전의 문수보살상은 고종의 비 명성황후(明成皇后: 1851∼1895)가,
석가모니불은 영친왕 이은(李垠)의 비인 이방자(李方子: 1901∼1989)가 모셨다 한다

지장탱화
주존 : 지장보살
지장보살 외에 광배 있는 인물 14명의 구성
하단 4명(왼쪽 부터 시왕1, 무독귀왕, 도명존자. 시왕2)
중단 8(모두 시왕)
상단 2명은 천녀로 추정
* 보통 지장탱화에서 천녀는 광배가 없지만 이 지장탱화에서는 천녀에게 광배를 주었다

상단 중앙 : 예적금강(3두8비)
예적금강 좌우의 광배 있는 인물 2명은 좌: 제석천 우: 대범천
하단 중앙: 동진보살(=위태천)
아래는 요사로 보인다

끝의 주련만 사진 찍었고 나머지 주련은 사진으로 담지 못했다
無上甚深微妙法 무상심심미묘법
百千萬劫難遭遇 맥천만겁난조우
我今聞見得受持 아금문견득수지
願解如來眞實意 원해여래진실의
출처 : 천수경
천연문수동굴



廓*周沙界聖伽藍 곽주사계성가람
萬目文殊接話談 만목문수접화담
言下不知開活眼 언하부지개활안
回頭只見舊山庵 회두지견구산암
* 廓: 넓을 곽(확)
넓고 넓은 항하사 세계가 성스러운 가람이니
온 세상에 가득한 문수보살과 대화를 나누었네
대화를 나누면서도 깨달음의 눈 못 뜨고
머리 돌려 바라보니 다만 옛 절과 바위뿐이네
위의 시는 당나라 無着文喜(821∼900) 선사가 五臺山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한 뒤에 지은 게송이다. 문수보살정근에서 염송한다

천연 문수동굴은 고려예종4년 大鑑坦然國師가 절묘한 기암괴석과 천연동굴의 경관에 매료되어
이곳에 불우를 지어 문수암이라 하고 이 천연동굴을 문수굴이라 명명하였다.
그 뒤 慧淨 스님의 중창불사로 동굴법당으로 중수되어 문수보살님을 모시고 불자들의 기도처로서 사용되고 있다.
응진전(=나한전)





假使頂戴經塵劫 가사정대경진겁
身爲床座遍三千 신위상좌변삼천
若不傳法度眾生 약불전법도중생
畢竟無能報恩者 필경무능보은자
설령 헤아릴 수 없는 겁에 걸쳐 경전을 받들어 수지하고
이 몸이 침상이 되어 삼천세계에 두루 하더라도
법을 전하여 중생을 제도하지 않으면
끝내 부처님의 은혜를 갚지 못하리라
출처 : 치문경훈(繼門警訓)
*위의 게송은 사찰마다 약간 변형된 형태가 되어 주련으로 걸리기도 한다

응진전(나한전)에도 석가모니불이 주불이고,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은 협시하고 있다

신중단으로 보인다
문수사에서 바라본 경관


대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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