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남양주 천마산 보광사/해인서원

대효0617 2026. 4. 4. 21:21

방문 : 2026.03.07

 

 

1. 보광사

 

유래와 연혁

 

고려 광종 때 혜거국사(慧炬國師)가 창건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소실되어 가다기 1851년 철종2년에 3정승을 지내었던 李裕元(1814~1888)이 꿈에 관세음보살을 만나고 독실한 신심으로 절을 대규모로 중건하고 자신의 정신적 스승인 당대의 고승 화담당 경화(華潭堂 敬和)선사를 모셨다. 1894(고종 31) 봉성ㆍ서린(奉城 서린)스님이 일제가 침탈해 오자 천마산 전체와 전답 그리고 보광사까지 모두 정리한 금전 20만원과 이유원의 장자 이석영은 부친의 재산 망우리 전체와 금호동 일대의 토지를 모두 정리 금전 25만원 모두 45만원을 가지고 1909년 겨울에 압록강을 건너가 30만원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을 양성하고 1919년 삼일 만세운동과 대한민국 독립선언서가 나오자 중국 상해 조개 지역에 임시정부를 설립하여 흩어져 있던 임시정부를 하나로 모았다. 비지를 얻어다 죽을 먹으며 연명하다 19323년 봉성 서린스님은 아사하였고 이어 1934년 영석 이석영선생 또한 아사했다.
모든 재원을 독립에 바친 보광사는 사세가 참으로 초라했다. 한국 전란으로 소실되고, 1960년에 대웅전마저 소실되었다. 그렇게 절터만 남아있던 곳에 학산당 영순(鶴山堂 永順)스님이 뜻을 세워 보광사의 명맥을 유지하였고, 1982년 화담당 유덕(和潭堂 悠德)스님이 절의 재건을 발원하여 사세를 대폭 확장하다가 1997년 입멸하였다. 유덕 스님의 뒤를 이어 제자들이 뒤를 이어 사찰의 중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보광사 홈페이지 내용 약술 http://www.bokwangsa.or.kr/pages/sub1_2.php)

기타 참조  

[사찰에서 만나는 우리 역사] <37> 남양주 보광사(寶光寺)

https://backsong.tistory.com/10139

 

대웅보전

 

 

 

 

若人欲識佛境界* 약인욕식불경계

當淨其意若虛空  당정기의약허공

遠離妄想及諸趣   원리망상급제취

令心所向皆無碍   영심소향개무애

 

*나의 소장본에는 若有欲知佛境界로 되어 있다 

 

화엄경 제50如來出現品 37/1

 

 

대웅보전 내부

 

 

 

 

삼성각

 

 

 

 

 

 

 

 

 

 

四向四果早圓成 사향사과조원성

三名六通悉具足 삼명육통실구족

密承我佛叮寧囑 밀승아불정녕촉

住世恒爲眞福田 주세항위진복전

 

* 叮寧= 丁寧

 

 

* 四向四果 깨달음을 얻은 성자들의 수행 단계 [및 도달 경지 [] 의미

1) 預流 (須陀洹 ): 성자의 흐름에 들어섰다는 뜻

2) 一來 (斯陀含) : 수행이 깊어져 인간 세상에 단 한번만 더 태어나면 완전한 깨달음을 얻는다

3) 不還 (阿那含 ) : 감가적 욕망과 분노까 끊어져 죽은 뒤 인간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고 천사에서 열반에 든다

4) 應供 (阿羅漢 ) : 모든 번뇌를 완전히 소멸하여 다시는 윤회하지 않는 최고의 경지

*三明六通

六通 수행자가 얻는  6 가지 신통력으로  神足通(원하는 곳에 찰나 간에 갈 수 있는 능력 ), 天耳通(거리나 소리의 크기에 상관없이 모든 소리를 듣는 능력 ), 他心通(남의 마음을 거울처럼 들여다보고 아는 능력 ),宿命通 (자신과 남의  과거 생을 아는 능력 ), 天眼通(모든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는 능력 ), 漏盡通(번뇌를 완전히 소멸한 능력으로 부처님만이 갖추셨다 )

三明  :육통 중에서 특히 중요한  3 가지가 밝게 이루어진 상태인  宿命明 , 天眼明 , 漏盡明 을 의미한다

 

 

삼성각  내부

 

 

 

산신각 역할 

 

 

독성각 역할 : 나반존자(독성) 

 

 

 

칠성각 역할

 

중앙이 치성광여래(북극성), 좌우보처는 일광보살(우)과 월광보살(좌), 상단의 광배 인물 7명 : 북두칠성

그밖의 인물들은 28宿을 부분적으로  암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머리가 유난히 긴 노인은  壽老人 (=남극노인성; 수명을 관장)이다 

 

 

외벽 불화

 

 

 

 

 

 

백거이(白居易)와 도림선사(道林禪師)에 관련된 일화이다

 

백거이(白居易, 772~846)는 중국 중당시대(中唐時代)의 시인으로 자는 낙천(樂天)이다. 향산거사(香山居士)로도 불리웠다. 백락천이 지은 글로는 비파행(琵琶行)과 장한가(長恨歌)가 특히 유명하다

백락천이 항주 자사(刺史)로 부임했을 때의 일이다

항주 근처의 사찰에 도림(道林, 741-824)이라는 이름난 고승이 있었다. 도림선사는 항주(抗州) 출신으로 9세 때 출가하여 도흠선사(道欽禪師) 등으로부터 심요를 전수받았다.

스님은 늘 나무 위에 올라가 참선을 했는데 그 옆에는 까치가 둥지를 틀고 살기도 했다고 하여 작소선사(鵲巢禪師) 조과선사(鳥窠禪師) 라고도 불렸다.

불경에도 해박했던 백거이는 소문을 듣고 직접 시험해 보고자 작정하고 과원사의 도림선사를 찾아갔다. 도림 선사는 곧잘 경내의 노송 위에 올라가 좌선을 하곤 했는데 마침 이 때도 노송 위에서 좌선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를 본 백낙천은 스님의 거처가 너무 위험합니다하니 선사는 내려다보며 자네가 더 위험하네하였다

이에 백낙천은 저는 이미 벼슬이 자사에 올라 강산을 진압하고 안전한 땅을 밟고 있거늘 무엇이 위험하단 말입니까라고 하였다

그의 자만심을 이미 꿰뚫어 본 선사가 티끌 같은 세상의 지식으로 교만심만 늘고 번뇌와 탐욕이 쉬지 않으니 어찌 위험하지 않은가?” 하니 백낙천은 선사의 기개에 눌려 가르침을 청하였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떤 것입니까?”

도림선사는 위에서 답했다.

모든 악한 일을 행하지 말고 모든 선한 일을 받들어 행하는 것이다

백락천이 말했다.

이 정도 말은 세 살 난 아이들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도림선사가 대답했다

세 살 난 아이들도 다 알고 있지만 팔 십 먹은 노인도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에 백락천은 깨달은 바가 있어 공손히 절하고 과원사를 물러났다

 

 

도림선사의 말은 <법구경>에 나오는데 일곱부처님의 말씀으로 이것을 칠불통게라 한다

 

 

모든 악은 짓지 말고(諸惡莫作)

모든 선은 받들어 행하라(衆善奉行)

스스로 그 마음 맑게 하면(自淨其意)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是諸佛敎)

 

출처 : https://blog.naver.com/074098jms/223579451007

 

 

 

 

 

 

 

太顚禪師 (당나라, 732~ 824)와 한유에 관련된 일화이다 

 

태전선사는 당정원(唐貞元) 6(790) 조주(潮州) 영산(靈山) 축융봉(鷲融峰)에 계셨는데 선사의 고명한 명성에 당대의 고명한 학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나라 헌종(憲宗)때 명문장가(名文章家) 한유(韓愈 768~824)) 한퇴지(韓退之)가 불교를 배척하여 불골표(佛骨表)를 올렸다가 조주자사(潮州刺史)로 좌천되어 상심하던차에 이 곳에 유명한 선승이 도를 닦고 있다는 말에 그 지방의 출중한 기생 홍련(紅蓮)에게 선사를 파계시킬 계책으로 미인계를 짜고 10일 안에 선사를 파계시키면 큰 상()을 줄 것이다 하고 파견하였다. 홍련은 자신에 차서 기도를 하러 왔다 하고 갖은 아양을 떨고 수작을 부리고 유혹을 하였으나 스님이 꿈쩍을 하지 않자 소득없이 하산할 일이 걱정이 되어 고민하다 이 고매한 스님에게 이실직고하고 도와 주시라 청을하여 선사께서 홍련을 가여이 여기시고 홍련의 치마폭에  아래와 같은 시를 써주었다 한다. 그리하여 한유가 이 시를 보고 감탄하여 다음부터는 태전스님에게 불법의 요지를 전해 받았다 한다

 

十年不下鷲融峰 십년불하축융봉

觀色觀空色卽空 관색관공색즉공

如何曹溪一滴水 여하조계일적수

肯墮紅蓮一葉中 긍타홍연일엽중

虛空刀杖雨我身 허공도장우아신

寸寸節節割我體 촌촌절절할아체

我若不渡生死海 아약부도생사해

終不離此菩提坐 종불리차보리좌

 

십년을 축융봉에서 내려가지 않고

색이 공함을 관찰하니 색이 곧 공이라

어찌 조계의 물 한 방울을

붉은 연꽃의 꽃잎에 떨어뜨리리

 

칼과 몽둥이가 허공에서 나에게 비처럼 쏟아져

내 몸을 갈기갈기 토막내더라도

생사의 바다를 건너지 못한다면

목숨 다하도록 보리의 이 자리 떠나지 않으리

 

아래 출처의 내용 요약 : https://m.blog.naver.com/wndeh9876/220738797097

 

 

 

 

 

 

신찬(神贊) 스님은 중국 북주에 있는 고령사로 출가했다. 그의 은사 계현(戒賢) 법사는 신찬이 훌륭한 강사가 되어 자기의 뒤를 이어줄 것을 기대했다. 신찬은 타고난 현명함과 꾸준한 노력으로 오래지 않아 스승의 실력을 능가하게 되었다.

불교 경전을 어느 정도 섭렵한 신찬은 참선을 통해 생사해탈의 큰일을 마쳐야겠다고 자신의 간절한 뜻을 스승에게 말씀드렸으나, 스승은 냉담한 반응만을 보일 뿐이었다. 이에 신찬은 몰래 도망하여 백장(百丈: 당나라 스님. 총림을 처음 열고 선종의 규칙 제정)의 문하로 들어가 여러 해 정진을 거듭한 마침내 견성오도(見性悟道)했다.

깨달음을 얻은 신찬은 고령사로 돌아왔다. 계현 법사는 너는 여러 해 동안 소식이 없었다. 그동안 무슨 소득이라도 있었느냐?”묻자 신찬은 아무 것도 얻은 바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세상의 모든 법은 가짜 존재이므로 한 물건도 집착할 것이 없음을 말한다)인데 무슨 얻은 것이 있겠느냐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 말의 뜻을 알아듣지 못한 스승은 신찬이 허송세월만 하고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신찬에 대하여 실망한 스승은 절에서 천한 일이나 할 것을 명하였다.

그러던 중 하루는 계현 법사가 신찬에게 목욕물을 준비시키고 등을 닦아달라고 부탁하자 스승의 등을 가볍게 밀면서 중얼거렸다.

법당은 참 좋은데, 부처가 영험이 없구나.” 스승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흘끗 돌아보자 신찬은 부처가 영험은 없어도 방광(放光)은 할 줄 아는구나.”라고 말했다. 그러자 스승은 신찬이 심상한 인물이 아님을 언뜻 짐작했다.

또한 계현 법사가 창 아래 놓인 책상 앞에 앉아 경전을 읽던 어느 날, 꿀벌 한 마리가 방안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려고 애쓰고 있었다. 꿀벌은 반쯤 열린 문 사이로 나가면 되는데도 꼭 닫힌 창문에 몸을 부딪치며 헛된 노력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 모양을 묵묵히 지켜보던 신찬이 스승에게 들리도록 게송을 지어 읊었다.

활짝 열어놓은 저 문은 마다하고 굳게 닫힌 창문만을 두드리는구나. 백년동안 옛 종이를 뚫으려 한들 어느 때에 벗어나길 기약하리오.”

空門不肯出

投窓也大痴

百年鑽古紙

何日出頭期

 

게송을 들은 스승은 보던 경전을 덮고 묵묵히 신찬을 바라보았다.

나는 네가 허송세월만 하고 돌아온 줄 알았더니, 그렇지 않구나. 너의 태도가 범상치 않으니 그동안 누구의 문하에서 어떤 법을 배웠는지 말해 보아라.”

스님, 무례한 말씀을 드려 죄송합니다. 실은 그동안 백장선사 법좌에서 불법의 요지를 깨닫고 왔습니다. 돌아와 보니 스님께서 참 공부에는 뜻이 없으시고 여전히 문자에만 골몰하고 계신 것이 민망했습니다. 제가 권하여도 들으실 리 없는지라 말씀을 누차 드려 참다운 발심을 촉구하였던 것입니다.”

비록 나의 상좌이긴 하나 공부로는 나의 스승이니 지금부터 백장 스님을 대신하여 나에게 불법을 설법하여 다오.”

계현 스님은 대중을 모이게 한 뒤에 법상(法床)에 신찬이 올라 대중을 향하여 설법을 시작했다.

신령한 빛이 홀로 빛나 인식의 세계를 벗어났으니 참모습이 드러나 문자에 걸림이 없도다.

마음은 물들지 않고 스스로 원만히 이루어져 있으니 다만 망령된 인연만 여의면 곧 부처니라.”

 

 

출처 : 제주불교신문(http://www.jejubulgyo.com)

 

 

 

 

 

 

 

 

고구려 보덕선사의 사찰 이주 설화 관련 불화이다. 

 

고구려는 소수림왕 때 불교가 들어와 융성하였으나 보장왕  때 대막리지 연개소문이 집권하면서어 도교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불교는 탄압하였다. 이에  보덕화상이 수행하던 사찰(평양의 盤龍寺)도 박해를 받자 도력으로 방장을 날려 사찰을 통채로 백제의 완산주(지금의 전주) 고덕산으로 옮기었다 한다. 사찰 이름은  景福寺(650년)라 하였다(경복사는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일종의 종교적 망명을 택하였던  보덕선사와 관련된 남한의 사찰 창건 설화는 경보사 외에도 몇 곳에 있다 

1) 공주 계룡산 新元寺 (651년, 의자왕 11년)

2) 김제 승가산 흥복사

3) 고창 방장산 상원사

 

 

 

 

 

 

 

 

지장보살 입상

 

 

 

 

중창주 화당당 유덕 대선사 공덕 기념비

 

 

 

 

 

2.  해인선원

 

유래와 연혁 :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최근에 지은 선원으로 보인다,  

 

 

 

 

 

 

 

대웅전

 

 

 

대웅전 주련은 보통 보는 것이다 

 

 

佛身普遍十方中

三世如來一切同

廣大願雲恒不盡

汪洋覺海妙難窮

 

이들 4개의 주련 옆에 좀 생소한 주련이 2개 더 있다

 

拈匙先念食之功

求名求利如朝露

 

쉬운 한문이라 뜻풀이는 생략한다 

 

 

지장보살 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