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의왕 청계사
2026.01.20 방문
연혁
대한불교조계종 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으며, 대찰의 모습을 갖춘 것은 1284년(충렬왕 10) 시중 조인규(趙仁規)가 막대한 사재를 투입하여 중창하고 그의 원찰로 삼은 뒤부터이다. 그때부터 이 절에는 100명이 넘는 수도승이 상주하였다. 자손들이 여기에 그의 사당을 짓고, 전장과 노비를 두어 대대로 제사를 지냈다.1407년(태종 7) 조정에서는 이 절을 자복사(資福寺)로 지정하고 천태종에 소속시켰으며, 1431년(세종 13) 조인규 영당을 중건하였고, 연산군이 도성 내의 사찰에 대한 폐쇄령을 내렸을 때 이 절은 봉은사(奉恩寺)를 대신하여 선종본찰(禪宗本刹)의 기능을 행하는 정법호지도량(正法護持道場)이 되었다. 광해군 때는 이 절의 소속 전장과 노비를 모두 관에 소속시켰고, 1689년(숙종 15) 3월 화재로 모든 건물이 불탔을 때 성희(性熙)가 중건하였다.1761년(영조 37) 정조가 동궁으로 있을 때 이 절에 원당을 설치한 뒤 밤나무 3,000주를 심고 원감(園監)을 두었으며, 1798년(정조 22) 조무의(趙武毅)의 시주로 중창하였다. 1876년(고종 13) 3월 26일 실화로 수십 칸의 건물이 소실되자 4년 후인 1879년에 음곡(陰谷)이 중건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종교 탄압정책으로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여 이어 오다가 1955년 비구니 아연(娥演)이 주지로 취임한 뒤 중창을 시작하였고, 월덕(月德) · 탄성(呑星) · 월탄(月誕) 등이 그 뜻을 이어 당우를복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삼성각(三聖閣) · 산신각 · 종각 · 수각(水閣) · 봉향각(奉香閣) · 대방(大房) 등이 있다. 이 중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양식으로 처마는 이중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사인비구(思印比丘)가 제작한 동종이 2000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청계사 소장 목판이 1988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신중도가 2012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절 입구에는 2014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청계사사적기비(淸溪寺事蹟記碑)와 2014년 경기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청계사조정숙공사당기비(淸溪寺趙貞肅公祠堂記碑)가 있고, 사찰 주위의 계곡이 좋다.
*조인규: 충선왕의 국구. 원래 한미한 집안 출신이었으나 뛰어난 몽고어 실력으로 출세하여 충렬왕, 충선왕 때 재상을 지내었다
사찰 前景

사천왕: 여기는 사천왕이 문이 없이 길을 지키고 있다

동 지국천왕

남 증장천왕

서 비사문천왕

북 다문천왕

만세루 뒷면의 현판은 설법전으로 되어 있다

극락보전





극락보전 삼존불

왼쪽 : 관음보살 중앙 : 아미타불 오른쪽 : 대세지보살
* 청계사는 예전에 관음보살 불상에 우담바라꽃이 피었다고 해서 크게 소문이 났던 적이 있디. 사실은 실잠자리 알이었다.
극락보전 칠여래도: 왼쪽 영단에 위치

七如來: 영가들을 천도하는 의식(관음시식)에 나오는 일곱 부처님
1) 다보여래(多寶如來) : 동방 보정세계(寶淨世界)의 교주(敎主)로서,보살로 있을 때에 "내가 성불하여 멸도한 뒤,시방세계(十方世界)에서 법화경(法華經)을 설하는 곳에는 나의 보탑(寶塔)이 솟아나와 그 설법을 증명하리라"고 서원한 부처님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영축산(靈鷲山)에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에도 다보탑이 솟아 나왔다고 합니다. 불국사에 있는 석가탑과 다보탑은 다보여래의 서원과 출현을 설하신 법화경 견보탑품(見寶塔品)의 내용을 불국정토에 예술적으로 구현한 불교 장엄물입니다.
2) 보승여래(寶勝如來) : 달리 "보생불(寶生佛)"로도 불리며, 평등성지(平等性智)를 나타내는 부처님으로서 평등한 마음을 갖게 하여, 인색과 탐욕을 떨쳐 버리고 법의 재물을 얻게 하는 부처님입니다.
3) 묘색신여래(妙色身如來) : 대원경지(大圓境智)를 나타내는 부처님으로서, 영가를 대원경지에 들게 하여 추한 모습을 버리고 원만한 모양을 갖게 합니다.
4) 광박신여래(廣博身如來) : 법계체성지(法界體性智)를 나타내는 부처님으로서, 범부들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여섯 가지 몸을 가지고 '나'라고 집착하는 생각을 떨쳐 버리고 법계지인 공성(空性)을 깨달아 허공과 같음을 깨닫게 합니다.
5) 이포외여래(離怖畏如來) : 성소작지(成所作智)를 나타내는 부처님으로, 부처님이 수행으로써 모든 팔만 사천 마군의 공격을 물리치고 성불을 한 것과 같이 모든 고혼들이 두려움을 떠나 열반의 줄거움을 얻게 합니다.
6) 감로왕여래(甘露王如來) : 묘관찰지(妙觀察智)를 나타내는 부처님으로, 모든 아귀와 영가들의 목구멍을 크게 열어서 음식을 맛있게 먹게 합니다.
7)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 : 무량광여래(無量光如來) 또는 무량수여래(無量壽如來)라고 의역합니다. 아미타 부처님의 광명과 자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무한한 세계에까지 미치고 있으며, 이 광명을 받은 자는 일체의 고(苦)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부처님은 법장(法藏) 비구로서 48가지의 큰 서원(誓願)을 세워 성불한 후 지금도 서방 극락세계(極樂世界)에 계시면서 중생들이 대자비에 의하여 영원의 구원을 받게 하신답니다.
출처: 목야뜨락
https://m.blog.naver.com/buddhafind/220429932432
원출처: 불교학당
칠여래불 탱화 오른쪽에는 지장보살도가 걸려 있다

칠여래불 탱화 왼쪽에는 관음보살 탱화가 걸려 있다

극락보전 근처
부처님 열반상

차돌을 붙여 조성하였다 한다
열반상 앞에 있는 것은 관음보살인가? 어는 분은 출가 전 싯달타를 묘사한 것이라 하는데 이에 대한 설명이 없어 모르겠다
영산전

영산전 주련




지장전

지장전 내부: 지장보살과 시왕

선불장

2. 군포 수리사
2026.01.20 방문
연혁
수리사(修理寺)의 창건 시기는 확실하지 않다. 진흥왕(眞興王) 때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근거가 없다. 수리사가 기록에 처음 보이는 것은 고려시대 승려 수좌(首座) 관오(觀奧)의 묘지명이다. 묘지명에는 수좌가 1154년(의종 8)에 수리사 주지를 맡았다고 써 있다. 수리사가 12세기에 세워진 것은 확실하다. 최근 수리사 근처에서 통일신라 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불상이 발견되어 절의 창건 연대는 통일신라까지 소급될 수 있다.
변천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수리사는 무인 정권기인 1217년(고종 4)에 개경의 흥왕사와 홍원사, 경복사, 왕륜사, 안양의 안양사와 더불어 최충헌(崔忠獻) 제거 반란에 참여하였다. 조선시대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도 수리사가 보인다. 전하는 말에 조선시대 곽재우(郭再祐)가 중창하였다고 하나 근거가 없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보이지 않아 쇠락한 것으로 보이지만, 1899년(광무 3) 『범우고(梵宇攷)』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명맥은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이후에 중건되었다. 2010년 수리산 일대에서 실시한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과정 중, 대웅전 뒤편에서 금동불상이 발견되었다.
대웅전

나한전

나한전 주련




靑蓮座上月如生 청련좌상월여생
三千界主釋迦尊 삼천계주석가존
紫紺宮中星若列 자감궁중성약렬
十六大阿羅漢衆 십육대아라한중
푸른 연꽃 자리 위에 보름달이 뜬듯
석가모니 부처님 삼천대천세계 주인이시고
자감궁에 뭇별이 늘어선듯
대아라한님들 열 여섯 분이라
* 紫紺宮: 忉利天의 善見城에 있는 궁전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어머니 마야부인은 죽은 후 이곳 도리천에 태어나셨는데 석가모니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 도리천에 올라가 어머니를 위해 설법하시었다 한다
출처 : 나한전 장엄송,석문의범이라고 되어 있느나 확인 못함
삼성각



삼성각의 산신

수리사 아미타불(마애불)

범종
주조한지 얼마 안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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